Elie Wuesel
" If we forget, we are guilty. we are accompliences..We must take sides. Neutrality helps the oppressor, never the victim. Silence encourages the tormentor, never the tormented."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위대한 책을 쓰고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까지 안게 된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라 하지만 내가 살아남은 것은 '우연' 그 이상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나의 생존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집필이, 이것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을 수용소에서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인 것인가? 내가 집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시인한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수용소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증언' 없이는 작가로서의 내 삶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그곳에서의 경험, 그리고 나의 증언은 나를 '인간 역사에서 자신들의 죄가 지워짐으로써 적들이 최후의 승리를 만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유태인 학살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 'Night'.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극적인 순간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어린나이에 끊임없이 극도의 폭력에 시달리고, 그토록 간절히 믿던 신을 부정하게 되고, 결국 죽음의 유혹이 오히려 달콤하게 느껴지는 순간에까지 이르게 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혹은 작가의)삶이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해방, 자유에 대한 희망? 가장 그럴듯한 이유같아 보였다. 하지만 '확신'이 아닌 막연한 '희망'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이유가 될 수있는 것일까. 수용소에서 '삶'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도 그저 그날 그날의 빵과 수프가 전부인 그런 것이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줬다.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고통을 멈추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옆에서 함께 고통을 이겨내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는 아버지의 존재보다 컸다. "이곳에선 우리 모두 혼자 살고 혼자 죽는 거야"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긴 지옥의 터널을 지나고 또 많은 시간을 살아 이제는 나이가 든 작가앞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어린 소년, 소설 속의 주인공이 말을 건다. "Tell me. What have you done with my future? What have you done with your life?" 작가는 대답한다.
"I have tried.That I have tried to keep memory alive, that I have tried to fight those who would forget. Because if we forget, we are guilty, we are accomplices."
이제 왜 작가가 자신의 생존이 '우연'에 불과했다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삶'의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살아났다고 한다면 어쩌면 그건 (작가 스스로가 인정했듯) 이유가 아니라 의미부여, 변명일지도 모른다. 이유이건 변명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당신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묻는 어린 소년, 과거의 자신앞에 떳떳하게 "열심히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삶, 그 삶을 통해 보여준 역사에 대한 증언과 각성 그 자체가 소중하고 감동적인 것이다.
한동안 삶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삶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를 찾으면 그 이유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란 게 있을까. 결국 의미부여를 위한 변명은 아닐까. 또 그것이 변명일지라도 삶 전체를 통해 보여지는 진정성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마음을 다해 들어줄 수 있는 변명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 '그동안 내가 왜, 무엇때문에 살아왔는가'하는 문제는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 않다. 작가가 마주친 어린 소년의 물음, "What have you done with your life"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 마주치게 될 물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이 무엇으로 남겨지는가, 삶을 통해 무엇을 해왔는가라고 물었을때, 스스로에게(외부에 의해 세워진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떳떳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된 것이 아닐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이 나라에,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물론 의식적인 노력의 탓도 있지만 어찌어찌해서 지금 대학엘 다니고 있고 교환학생이랍시고 다른 나라에 와서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만난 소중한 인연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우연'외에는 달리 이름붙일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신체 건강하게 살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내 삶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