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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지고 변해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각 시대의 고민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세력들의 발자취를 통해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서술된다"라고 표지에 쓰여진 책 설명을 읽고 샀는데 속았다. 

 

 저자는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유주의'와 '청교도 정신'으로 대표되는 '미국적 가치', '미국적 생활방식'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세워진 '미국적 체제'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진보-좌파 진영이 권력층을 형성하고 공동체 주의 복지국가론등을 내세워 미국적 가치를 위협한 결과 신우파, 극우파의 사상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개인주의, 청교도주의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수-우파 새력이 얼마나 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따라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국력과 국가적 위신을 누릴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그들에 의해 '진짜 미국인'이라 일컬어지는 주로 백인 기독교인)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게으르고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우리의 재산을 지킬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동성애,낙태 등에 찬성함으로써 기독교 정신, 문화를 훼손해서는 안된다."이러한 정신이 미국의 번영과 국력을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성에 대한 존중, 기회의 평등, 이를 통해 개인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이 더욱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좌파이건 우파이건, 보수이건 진보이건 중요한 것은 현실 삶에 '대안'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어느 쪽에 표를 던질 지는 각 개인의 비전과 판단에 달려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자'라는 이론보다는 '가진 것을 어떻게 잘 나눠서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이론이 더 고민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자칫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마는 '쓸데없이 복잡한' 이론이 될 수 있다. "Back to the basics"라는 보수,우파의 주장이 훨씬 더 나은 대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좌파의 주장이 계속 고민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들이 변화와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돌아가야할 지켜야할 '오리지널'이 있다는 것은 '오리지널이 아닌 것들'. 새로운 것들을 소외시키고  배척할 수 있다. 새로움, 다름을 끌어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희망하는 것이 훨씬 더 멋진 일이 아닐까.    


Elie Wuesel 

" If we forget, we are guilty. we are  accompliences..We must take sides. Neutrality helps the oppressor, never the victim. Silence encourages the tormentor, never the tormented."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위대한 책을 쓰고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까지 안게 된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라 하지만 내가 살아남은 것은 '우연' 그 이상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나의 생존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집필이, 이것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을 수용소에서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인 것인가?  내가 집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시인한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수용소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증언' 없이는 작가로서의 내 삶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그곳에서의 경험, 그리고 나의 증언은 나를 '인간 역사에서 자신들의 죄가 지워짐으로써 적들이 최후의 승리를 만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유태인 학살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 'Night'.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극적인 순간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어린나이에 끊임없이 극도의 폭력에 시달리고, 그토록 간절히 믿던 신을 부정하게 되고, 결국 죽음의 유혹이 오히려 달콤하게 느껴지는 순간에까지 이르게 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혹은 작가의)삶이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해방, 자유에 대한 희망? 가장 그럴듯한 이유같아 보였다. 하지만 '확신'이 아닌 막연한 '희망'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이유가 될 수있는 것일까. 수용소에서 '삶'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도 그저 그날 그날의 빵과 수프가 전부인 그런 것이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줬다.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고통을 멈추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옆에서 함께 고통을 이겨내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는 아버지의 존재보다 컸다. "이곳에선 우리 모두 혼자 살고 혼자 죽는 거야"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긴 지옥의 터널을 지나고 또 많은 시간을 살아 이제는 나이가 든 작가앞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어린 소년, 소설 속의 주인공이 말을 건다.  "Tell me. What have you done with my future? What have you done with your life?" 작가는 대답한다.

"I have tried.That I have tried to keep memory alive, that I have tried to fight those who would forget. Because if we forget, we are guilty, we are accomplices."  

 이제 왜 작가가 자신의 생존이 '우연'에 불과했다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삶'의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살아났다고 한다면 어쩌면 그건 (작가 스스로가 인정했듯) 이유가 아니라 의미부여, 변명일지도 모른다. 이유이건 변명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당신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묻는 어린 소년, 과거의 자신앞에 떳떳하게 "열심히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삶, 그 삶을 통해 보여준 역사에 대한 증언과 각성 그 자체가 소중하고 감동적인 것이다.   

 한동안 삶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삶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를 찾으면 그 이유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란 게 있을까. 결국 의미부여를 위한 변명은 아닐까. 또 그것이 변명일지라도 삶 전체를 통해 보여지는 진정성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마음을 다해 들어줄 수 있는 변명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 '그동안 내가 왜, 무엇때문에 살아왔는가'하는 문제는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 않다. 작가가 마주친 어린 소년의 물음, "What have you done with your life"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 마주치게 될 물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이 무엇으로 남겨지는가, 삶을 통해 무엇을 해왔는가라고 물었을때, 스스로에게(외부에 의해 세워진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떳떳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된 것이 아닐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이 나라에,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물론 의식적인 노력의 탓도 있지만 어찌어찌해서 지금 대학엘 다니고 있고 교환학생이랍시고 다른 나라에 와서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만난 소중한 인연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우연'외에는 달리 이름붙일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신체 건강하게 살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내 삶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것.

    

오늘 하루 중 내가 제일 열심히 한 것은?

일기_나의 오늘 하루 2010/12/19 09:13 Posted by 삶에 밀착 보.조.개
잡지읽기

 '소비하는 인간'으로 참 잘 길러졌다. 나도 그렇고 또래 친구들 대부분 그러해 보이고. 머리를 하러가면 평소에 잘 읽지 않는 갖가지 패션,뷰티 잡지들을 읽는다. 예전엔 주로 모델들이나 예쁜 옷 사진을 보며 페이지를 슥슥 넘겼는데 이젠 거의 한권을 정독하는 수준이다. 잡지속 라이프 스타일의 '트렌디함'에 빠져드는 건 거의 자동적이다. 머리속에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들이 하나 둘씩 생겨난다. Editor's pick이라고 쓰여 있으면 더욱 끌린다. '욕망하게 하는 소비 지침서!'하는 생각에 반감이 들기도 하지만 '스타일의 차이지 뭐..'하고 치부해버리기도 쉽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비를 권장하고 물질로 가득찬 묵직한 이것은 상업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좀 그렇다.